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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소개

괴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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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명칭 연혁 및 유래

연혁

  • ①잉근내군
    고구려 (475)
  • ②괴양군
    신라 (757)
  • ③괴주군
    고려 (940)
  • ④괴산군
    조선태종 (1413)

유래

  • 신라 진평왕 28년(606) 장수 찬덕이 가잠성에서 백제군에게 100일동안 공격을 받아 성이 완전 고립되었으나 찬덕은 항복하지 않고 성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 받고 자결하였음.
  • 태종 무열왕(김춘추)은 찬덕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가잠성"을 [괴양(槐壤*)]이라고 부르게 하였음. * 槐:회화나무 괴, 壤:흙 양
  • * 槐:회화나무 괴, 山:뫼 산

괴산의 역사 개요

  • 광복 이후
    • 1963. 1. 1. :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문경군 농암면 삼송리 1개 리가 청천면에 편입
    • 1973. 7. 1. : 괴산군 불정면 문등리가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 중원군 이류면 하문리가 불정면에 편입, 청원군 북이면 초중리가 증평읍에 편입, 감물면 검승리가 괴산면으로 편입
    • 1979. 5. 1. : 괴산면이 읍으로 승격
    • 1990. 12. 31. : 충청북도 조례 제1864호로 괴산군 소속 증평읍과 도안면의 행정을 분리하여 도 직속기관인 충청북도 증평출장소에서 관장
    • 2003. 8. 30. : 괴산군 증평읍, 도안면이 증평군으로 분리
  • 광복 이전
    • 조선 말까지 괴산군, 연풍현, 청안현과 충주, 청주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괴산 지역은 일제 강점 후에 1910년 9월 3일 단행된 지방관제 제정으로 오늘날과 같은 편제를 지니게 되었으며, 1914년 3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괴산, 연풍, 청안이 합하여 괴산군으로 편제되었다.
  • 조선시대(朝鮮時代)
    • 조선 초기에 이르러 괴산 지역은 고려 말의 楊廣道에서 忠淸道로 그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대체로 忠淸左道에 속하였다. 즉 左道의 그 牧인 忠州牧 소관의 槐山郡과 延豊縣, 淸州牧 소관의 淸安縣으로 구성되었다. 괴산군은 조선 太宗 3년(1403)에 知槐州事로 승격되었다가 同 13년(1413)10월 15일 槐山郡이라 하였다.
  • 고려시대(高麗時代)
    • 고려 成宗 14년(995) 지방제도 정비 후에 괴산은 충주, 청주 등 13주 45현으로 구성된 中原道에 속했으나 이후 顯宗 9년(1018) 괴산지역은 충주목의 속군인 槐州郡과 속현인 長延縣, 長豊縣 및 청주목의 속현인 靑川縣, 淸安縣 淸唐縣으로 구성되었으며 성종 때 始安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 삼국시대(三國時代)
    • [三國史記]지리지에 의하면 청천을 제외한 괴산, 연풍, 청안지역은 원래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의 영역에 들어간 후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해 신라에 통합되었다. 삼국이 서로 충돌하는 지리적 여건으로 삼국의 전장이 되기도 했다. 본래 고구려의 仍斤內君으로 신라 경덕왕 때 槐壤郡으로하였다.
  • 선사시대(先史時代)
    • 괴산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三國史記]인데 이미 선사시대 이래로 일정한 주민들이 거주했음을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간돌검, 돌도끼, 돌화살촉이나 고인돌(支石墓) 등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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