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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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 연풍면은 충청북도 일대가 고구려 영토가 되면서 연풍 장연면과 중원군 상모면 대부분을 합하여 상모현(上芼縣)이라 한 후부터는 명칭이 바뀌어 940년(고려 태조 23)에 장연현과 장풍현으로 분현됨에 따라 장연현으로 되었음. 1403년(조선 태종 3)에 장연현과 병합하여 장풍부(長豊府)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에 연풍현으로 격하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연풍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914년에 괴산군에 병합되면서 폐군되었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사리면의 신혜원과 장풍면의 음지동 일부를 병합하여 연풍군의 이름을 따서 연풍면이라 하고 분지·주진·삼풍·행촌·원풍·유상·유하 .적석·갈금리 등 9개 리로 개편하여 괴산군에 편입되었음
- 위치 : 연풍면은 동부에 점위되어 동남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접하고 있으며 북은 충주시 수안보면, 서는 장연면, 남은 칠성면과 인접함
- 면적: 93.2㎢(군의 11%, 임야 84%)
- 인구: 2,196명 (2024. 7. 1. 기준)
- 전화: 043)830-2472 ~ 2473
- 팩스: 043) 833-5302
지명유래
갈금리(葛琴里)
- 갈금리는 연풍면 서부에 위치하며 동은 유상리·유하리, 서은 장연면 송덕리, 남은 적석리에 인접하여 있음. 갈금리는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대동, 갈길리, 입석동, 오수동의 각 일부와 장연면 음지동 일부를 병합하여 갈길과 금대의 이름을 따서 갈금리라 하여 연풍면에 편입되었으며 갈길리, 금대리 등 2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음
- (가) 갈길리(葛吉里)
- ① 위치 : 갈금리 서쪽에 위치하며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금대리, 남은 칠성면 독점리, 서는 장연면 교동리, 북은 장연면 덕비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괴산군 연풍면 갈금리에 편입되었으며. 34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 예부터 행인을 위한 주막이 있었으나 1946년 수해로 모두 유실되어 전답으로 변하였으며 칡이 많아 갈길이라 이름지었다 함
- (나) 금대리(琴臺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약 5.5 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오수리, 남은 입석리, 서는 갈길리, 북은 장연면과 접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 연풍천이 흐르고 있음.
- ② 연혁 :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괴산군 연풍면 갈금리에 편입되었으며 칡넝쿨이 거문고 줄같이 온 산천을 덮고 있다하여 금대라 불렸다고 함.
- (가) 갈길리(葛吉里)
분지리(盆地里)
- ① 위치 : 연풍면 동남부에 위치하며 동, 남, 북 3면이 경상북도에 서쪽만이 연풍면 주진리에 접하고 있음.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분지리라 하였으며 면 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괴산군 극동에 해당됨
- ② 연혁 : 조선조 말엽까지 현 주진리와 함께 인지동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당시 주진리와 분리되어 분지리라 불리게 되었으며 사방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분지를 이루고 있어 분지리라 불리여 졌다고 함.
삼풍리(三豊里)
- 삼풍리는 연풍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주진리, 서은 적석리, 북은 행촌리와 인접하여 있음. 삼풍리는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괴정동, 홍문동, 행정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풍면에 편입되었으며 현재 괴정리, 홍문리 등 2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음.
- (가) 괴정리(傀亭里)
- ① 위치 : 삼풍리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조령산 남은 주진리 서는 적석리 북은 행촌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영남지방에서 이화령을 넘어 괴산을 거쳐 충청감영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연풍현이 설현되기 이전부터 인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 앞 들판 일대가 옛 절터이며 마을 서쪽에 쌍천이 흐르고 농경지가 많아 연풍면내에서도 제일 먼저 취락을 이루고 있었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괴정동 홍문동을 병합 삼풍리에 편입 되었다가 8·15광복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홍문리와 분리 괴정리라 칭하게 되었으며 마을에 느티나무 숲이 있어 괴정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함.
- (나) 홍문리(紅門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이 상가를 이루고 있다. 동과 북은 행촌리에 접하고 남은 괴정리 서는 적석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연풍현 당시 현청이 있었으며 마을 이름은 허문동 또는 허문(許門), 허문(許文) 등으로 고문서에는 기록되어 있으며 붉은 문(홍살문)이 있어 홈누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에 편입되었다가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괴정리와 분리 홍문리가 되었음
- ③ 유물유적
- 향청 현 천주교 연풍공소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 13호
- 소재 : 연풍면 삼풍리 161번지
- 고려말에 생긴 수령의 자문기관으로 수령을 보좌하고 풍속을 바로 잡으며 향리를 교찰하여 정령을 민간에게 전달하고 민정을 대표하는 지방 자치기관으로 좌수 한 사람과 좌별감 우별감이 있었음
- 천주교 성지
- 소재 : 연풍면 삼풍리 184-1번 부근에 성지조성 순교자 현양비와 제대, 십자가, 성모상, 황석두(루가) 성인상, 황석두(루가)묘 있음.
- 향청 현 천주교 연풍공소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 13호
- (가) 괴정리(傀亭里)
원풍리(院豊里)
원풍리는 동북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서쪽은 유상리, 남쪽은 행촌리, 북쪽은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 인접하여 있으며 원풍리는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풍동 사동, 고사리면 수옥리, 신혜원을 병합하여 신풍과 신혜원의 이름을 따서 원풍리라 하여 연풍면에 편입되었음
- (가) 신풍리(新豊里)
- ① 위치 : 원풍리의 서부에 위치하며 연풍면 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충주방면으로 약4km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수옥리 남쪽은 조령산을 경계로 경상북도 문경시와 서쪽은 유하리 북은 유상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고려시대의 고승 라옹대사가 산수 경관이 아름다운 지금의 절골 위에 상암사를 창건한 후 절골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조선조 중엽 이곳에 신풍역이 설치되면서 신풍마을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당시 사동과 고사리면의 신혜원리와 병합 신풍 과 신혜원의 이름을 따 원풍리라 칭하고 연풍면에 속하게 되었다가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신혜원과 분리 신풍리라 칭하게 되었음
- 유물
[마애불 좌상 : 보물 97호]- 소재지 :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산 124-1번지
- 개요 : 큰 암벽에 감실을 조성하고 이구의 불상을 조각하여 놓았으며, 조성수법을 보아 고려시대것으로 추정, 불상은 12m나 되는 큰 안벽에 감실을 3.63x3.63m로 파서 마련하고 이구병좌상으로 조각하였으며 얼굴은 둥글고 평판하며 가늘고 긴 눈, 넓적한 입, 등을 묘사하여 치졸하지만 미소가 번지고 있으며 어깨는 반듯하고 가슴은 평평함.
- (나) 신혜원(新惠院)
- ① 위치 : 면 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충주방면으로 약 6km 지점인 소조령 고개에서 우측으로 조령 삼관문으로 올라가는 관광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경상북도 문경시, 남은 신풍리, 서는 유상리 북은 충주시 상모면과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영남에서 조령을 넘어 서울로 올라가는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곳이요 조선조 시대의 원인 신혜원이 있던 곳이라 일찍부터 민가도 있었던 곳으로 여겨짐. 조선조때 연풍현이 설현 되면서 고사리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현내면 신풍동 사동을 병합하여 원풍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였다가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신풍리와 분리 옛 이름 그대로 신혜원 마을이라 칭하게 됨.
- ③ 관광
수옥폭포- 수옥정은 원풍리 새재 제 3관문 아래 수옥폭포 옆에 있는데 폭포의 암벽에 裕壽書』라고 숙종 37년(1711)에 東岡 趙相愚(1640-1719)가 정자를 지었다고 그의 조카인 後溪 趙裕壽(1663-1741)가 써 놓았는데 세종록에 숙종 32년(1706)에 연풍현감에 부임한 조유수가 우연히 이곳 개암나무 숲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폭포를 발견하고 수옥정을 세우니 연풍 사람들이 그를 기리어 바위에 글을 새기었다고했다. 그러나 그 후 폐 되었다가 1960년 괴산군의 지원을 받아 연풍 유지들이 그 자리에 팔각정을 세우고 수옥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유상리(柳上里)
- (가) 송우리(松隅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3.5km 지점에 있는 오수마을에서 요동마을 방면으로 군도를 따라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은 요동리 남은 내응리 서는 금대리와 장연면 덕비마을 동은 원풍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지명유래 : 약 500년전 남양홍씨가 정착하였다가 그 후 평지인 솔모랭이, 방골로 내려와 살았으며. 송우는 솔모랭이가 한자로 표기되였고 방골은 꽃이 많아 붙혀진 이름.
- (나) 요동리(要洞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3.5km 지점에 있는 오수리에서 군도를 따라 북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원풍리 북은 충주시 상모면 화천리 남은 유하리 서는 송우리와 접하고 있으며 연풍면 제일 북쪽에 위치해 있음
- ② 연혁 : 산골 마을이지만 땅이 기름지고 곡식이 잘되어 배불리 먹고사는 마을이라고 배부를 요자를 써 요동이라고 하였음.
유하리(柳下里)
- (가) 내응리(內甕里)
- ① 위치 : 면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약 3.5km지점 오수리에서 요동리로 가는 군도를 따라 약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원풍리 남은 행촌리 서는 오수리 북은 유상리 송우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지명유래 : 조선조 초기 청주경씨 동족이 집단으로 양지쪽에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지금의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지금의 마을로 옮겨 살게 되었으며 안터와 응고개로 각 이름을 따 내응이라고 하였다 함.
- (나) 오수리(梧水里)
- ① 위치 : 면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약 3.5 km지점이며 유상리로 통하는 군도의 기점이며 물아래 (연풍면의 서부) 7개리(오수, 내응, 송우, 요동, 금대, 갈길, 입석마을, 오수초등학교 학군)의 중앙에 위치하며 북은 유상리 동은 내응리 남은 적석리 서는 갈금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지명유래 : 마을 앞에 연풍천이 흐르고 주변에 농경지가 많아 일찍부터 집촌을 이룬듯 함. 오수(은티천, 분지천, 신풍천, 종산천, 유상천)이 모여 내를 이룬 곳이라 하였고 또는 오수, 오방에서 물이 흘러들어 온다고 하였음
적석리(積石里)
적석리는 서쪽에 위치하며 동쪽은 삼풍리, 서쪽은 칠성면 태성리, 남쪽은 주진리, 북쪽은 유하리에 인접하였음. 적석리는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곡동, 금대동, 입석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적곡과 입석의 이름을 따서 적석리라 하여 연풍면에 편입되었으며 입석리, 종산리 등 2개 행정리로 구성되었음
- (가) 입석리(立石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약 5km지점에 있는 장암교에서 농로를 따라 남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유하리 남은 주진리 서는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각연사와 독점마을과 북은 갈금리와 접해있음
- ② 지명유래 : 절터가 있고 기와 가마 터 등이 있으니 마을이 있었으리라 추정되며 마을 가까이 큰 입석이 있고 큰 바위가 많아 입석이라 불림.
- (나) 종산리(鍾山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약 1.5km 지점에서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삼풍리, 남은 주진리, 서는 입석리, 북은 행촌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조선조 숙종 15년경(1689) 지금의 구렁말에 자리를 잡고 기거하였으나 큰 화재로 마을이 전소되어 웃마을로 새로운 취락을 이루었으며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적곡동이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적석리에 속해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다가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입석리와 분리 종산리가 되었고. 마을 왼쪽 산봉우리가 종 같이 생겼다 하여 종산이라 부름
주진리(周榛里)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주티동(周峙洞) 진촌(榛村) 매바우(鷹岩) 새봉(鳥峯) 중리(中里)를 병합(倂合). 주티동(周峙洞)과 진촌(榛村)의 이름을 따 주진리(周榛里)라고 하여 연풍면에 속하였으며 그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진촌리 중리 은티리 세개 행정리동으로 분리 되었다.
- (가) 은티리(銀峙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중리 북은 삼풍리 서는 적석리 남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과 접하고 있으며 연풍면 최남쪽에 자리잡고 있음
- ② 연혁 : 1812년 작성한 동절목에는 인지동 의인촌으로 기록되어 있음. 그 후 한일합방 후 은티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당시 주진리에 속해 연풍면에 편입되였다가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진촌리 중리와 분리 은티리가 되었음
- (나) 중리리(中里里)
- ① 위치 : 면 소재지에서 은티리로 가는 농로를 따라 약 2km 지점에 있으며 동은 진촌리 북은 삼풍리 남은 은티 마을 서는 적석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지명유래 : 마을의 역사는 조선조초로 추정되며 연풍군 현내면 구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티동, 진촌, 매바우, 새봉, 중리를 병합 주진리라 칭하고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였으며 8.15 해방 후 행정구역 간소화에 따라 진촌, 은티와 분리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중리라 하였음.
- (다) 진촌리(榛村里)
- ① 위치 : 면소재지에서 농로를 따라 분지리 소류지 방면으로 약 3km 지점에 위치하며 동은 분지리, 서남은 중리 북은 삼풍리 남은 경상도 문경시 가은읍과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조선조 숙종조 신묘(1711)에 기록한 연풍읍지에 현내면 재현5리에 인지동(진촌, 중리, 은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개금나무 숲이 있어 마을 이름을 진촌이라 하였음.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티동, 진촌, 매바우, 새봉 중리를 병합 주진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다가 8.15 해방 후 중리 은티리와 분리 진촌리가 되었음.
행촌리(杏村里)
행촌리는 동쪽은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 서쪽은 유하리, 남쪽은 삼풍리, 북쪽은 유상리?원풍리에 인접하여 있으며 행촌리는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교촌, 행정, 율전과 홍문 사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행정과 교촌의 이름을 따서 행촌리라 하여 연풍면에 편입되었으며 현재 교촌리, 배상리, 율전리, 행정리 등 4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음.
- (가) 교촌리(校村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 있으며 동은 율전리 남은 괴정리 북은 행정리 서는 홍문 마을과 접하고 있으며 시내에 속해 있음.
- ② 연혁 : 조선조 초 태종 13년 연풍현이 설현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연풍군 은향정 이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당시 교촌, 행정 율전 과 사동 1부를 폐합 행촌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고 8.15 광복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행정리 율전리와 분리 향교가 위치하고 있어 교촌이라 불리게 되었음.
- ③ 유물유적
연풍향교 : 지방문화재 61호- 소재 : 괴산군 연풍며 행촌리 590번지
- 조선 중종 10년(1515)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鄕校在縣東 1里」라 하여연풍에 동쪽 1리에 있으며. 향교는 정면 5간 측면 2간 맛배지붕의 기와집인 대성전과 동, 서재 명륜당 내외삼문, 고직사가 있음.
- (나) 배상리(培祥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괴산방면으로 약 1km 지점 행촌리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삼풍리 홍문리 남은 적석리 종산마을 북은 유하리 서는 적석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가옥의 구조, 형태 등으로 보아 약 250년 전으로 추정되며, 동, 북, 서 삼면이 내로 둘러싸여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현상임. 연풍군 현내면 지역이었으며. 연풍면 행촌리 행정리에 속해 있다가 1957년 분동 배상리로 분구되었음.
- (다) 율전리(栗田里)
- ① 위치 : 면소재지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충주방면 약 8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조령산 남은 교촌리 서는 행정리 북은 신풍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조선조 초엽에 연풍현 설현후 신풍역으로 가는 길목이라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밭이라 마을 이름을 붙렸음. 연풍군 현내면 구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교촌리, 행정리, 사동, 홍문리의 일부를 병합 행촌리라 칭하고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다가 8.15 광복후 행정 구역 세분화에 따라 교촌리 행정리와 분리 율전리가 되었음.
- (라) 행정리(杏亭里)
- ① 위치 : 연풍면 소재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은 율전리 남은 삼풍리 서는 배상리 북은 유하리와 접하고 있음.
- ② 연혁 : 조선조 초 연풍현이 설현되면서 취락을 이룬둣함. 연풍군 현내면 지역 은행정이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당시 교촌리 율전리, 홍문리, 사동의 일부를 병합 행촌리라 하여 괴산군 연풍면에 편입되었으며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교촌, 율전과 분리 행정리(은행정)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