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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현황

괴산소개 읍면소개 청안면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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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청안면 사진
  • 청안면은 괴산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괴산군청 소재지에서 남서부로 21㎞지점이며 동은 청천면, 서는 증평군, 남은 청천면과 청주시 상당구, 북은 도안면과 사리면에 접하고 있다. 중부고속도로 증평 인터체인지에서 청안면까지는 10㎞ 정도이며, 소백산맥의 지맥인 칠보산과 좌구산을 분수령으로 남한강상류와 금강상류로 흐르는 분수령으로서 특산물은 고추를 비롯해 인삼, 수박, 감자, 느타리버섯, 양배추, 찰벼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들어 참외와 고구마, 찰벼 및 옥수수가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 면적 : 청안면 면적은 71.8㎢이다.(군의8.4%) 임야(48.6㎢), 전(9.3㎢), 답(7.21㎢), 기타(6.0㎢)
    • 인구 : 청안면 인구는 총1,653세대에 3,356명으로 남자1,742명이고 여자가1,614명으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 연락처 : 043)836-9301, 830-2561
    • 팩스 : 043) 836-9300
금신리(錦新里)

본래 청안현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며 옛날에 시장이 섰던 곳으로서 구장터(錦岩)라 하여 서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廢合)으로 청안면(靑安面) 금신리(錦新里)로 개편되어 오다가 1945년 조국의 광복후에 3개구로 구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가) 금신리 1리
    • 구장터마을(錦岩) : 사직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시장이 5일, 10일장이 섰더고 하나 현재에는 논으로 변하여 벼를 재배하고 있음.
    • 김계동마을(金鷄洞) : 구장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김 계가 알을 품는 형국이며 금신리 334-1 번지에 알과 같은 바위가 있음.
    • 송리고개 : 구장터 뒤에서 증평읍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송이버섯이 많이 낳다해서 유래됨.
  • (나) 금신리 2리
    • 외딴터 : 사직골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사직골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던 차씨 문중의 정자문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없어진 것으로 보아 차씨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거주한거 같다.
    • 자동마을(紫洞) : 사직골 뒤쪽에 있는 마을로 붉은 노을이 자주 덮었다 하여 유래된 마을.
  • (다) 금신리 3리
    • 새골(新洞) : 구장터 서남쪽에 새로된 마을.
    • 분턱골 : 새골 북쪽에 위치한 골자기이며 옛날에 금을 채굴하려면 여러사람들이 금을 캐지 못하고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속출하여 억울하고 분하여 붙여진 이름.
    • 삼밭골 : 옛날 인삼을 재배하여 불려온 이름이다.
    • 지방골 : 새골 남쪽에 위치한 골자기로 옛날 사람들이 살었다고 하나 마을은 없으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음.
    • 도둑골 : 새골 남쪽에 위치한 산 골짜기로 옛날 도둑들이 가축을 도살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음.
문당리(文塘里)

본래 청안군 동서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압항(鴨項), 이교(泥橋), 문억(文億), 매당(梅塘)의 이름을 따서 문당리(文塘里)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으며 1945년 광복후에 1,2구로 행정구역을 분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가) 문당리 1리
  • (나) 문당리 2리
    • 오리목 : 진다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오리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
    • 그럭실(문억(文億)) : 진다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선비나 학자들이 많이 났다 하여 유래된 이름
    • 목사동 : 진다리에서 서북쪽으로 600m~700m 떨어진 곳에 오래전부터 나무로 진 절이 있었 불러온 마을 이름이다.
    • 매당(梅塘) : 오리목 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역이 매화가 땅에 떨어진 형국이라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 진다리(이교(泥橋)) : 문당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뒷산이 긴다리 같이 생겼으며 흙이 몹시 질어서 생긴 이름이다.
문방리(文芳里)

본래 청주군 청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청운리, 한천리, 오리, 삼일리를 병합(倂合)하여 귀만리라 해서 괴산군에 편입(編入)되었다.

  • (가) 문방 1리
    • 성산(城山) : 문방리 으뜸되는 마을로 뒷산이 성처럼 둘러있다.
    • 서당골(書堂) : 성산소류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에 서당이 있던 자리라하여 붙여짐.
  • (나) 문방 2리
    • 구석골(龜岩) : 마을 성산 동쪽 구석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거북바위가 있어 구속골이라 불림.
    • 모정끝 : 옛날 어린이들이 한학을 배우던 곳
  • (다) 문방 3리
    • 강당 : 옛 조선시대에 강당이 있었다 하여 붙혀진 이름
    • 용산(龍山) : 성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 형국이 용처럼 생겼다고 이름 지어졌다 함.
    • 잣나무골 : 옛날에 잣나무 일곱그루가 있었는데 마을이 형성되면서 없어졌으나 잣나무가 있었던 뜻으로 유래됨.
    • 달은골(月隱) : 용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산 형태가 달이 숨은 모습을 하고 있다해서 유래된 마을이름이다.
백봉리(白峰里)

본래 청안군 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백산(白山) 유동(遊洞)삼봉(三峰)을 매평리(梅坪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백산(白山)과 삼봉(三峰)을 이름하여 백봉리(白峰里)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고 1985년 10월 15일에 부흥출장소(富興出張所)의 관할구역으로 편입(編入)되었다. 선사시대의 지명으로는 손동, 광암, 백산, 삼봉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1945년 광복후에 삼개구로 분구하여 행정을 수행하고 있다.

  • (가) 백봉리 1리
    • 삼봉리(三峰里) : 백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산이 삼개의 산봉우리가 있다하여 붙여졌음
  • (나) 백봉리 1리
    • 유동(遊洞) : 삼볼이에서 가장 큰마을로 유산하에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 (다) 백봉리 1리
    • 삼막골 : 점촌아래 동리로서 골짜기 세 개가 합쳐진 곳에 이루어진 마을이다.
    • 점촌(店村) : 삼봉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옹기점이 있던 곳이다.
부흥리(富興里)

본래 청안군 동서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신흥(新興), 석둔(石屯), 부기(富基), 매평리(梅坪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부기리(富基里)와 신흥리(新興里)의 이름을 따서 부흥리(富興里)라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1985년 10월 15일에 이곳에 부흥출장소(富興出張所)가 설치되면서부터 부흥출장소 소재지가 되었다. 옛날에는 청안군 동서에 속하였는데 석둔, 부기, 매암리, 매평리, 광암, 사거리, 신흥, 분제를 합하여 부흥으로 편성되었다.

  • (가) 부흥리 1리
    • 골안, 매석
  • (나) 부흥리 2리
    • 거래고개(富興石灰), 공장말, 부귀실매
  • (다) 부흥리 3리
    • 분저울(汾堤울)
  • (다) 부흥리 4리
    • 석둔리(石屯里), 새동내
  • (다) 부흥리 5리
    • 주막거리
운곡리(雲谷里)

본래 청안군 동서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괴곡(槐谷), 홍동(洪洞), 외장(外長), 압리(鴨里), 운수(雲水), 내장압(內長鴨), 삼봉리(三峰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운수(雲水)와 괴곡(槐谷)의 이름을 따서 운곡리(雲谷里)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1985년10월 15일에 부흥출장소(富興出張所) 관할로 편입(編入)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전하여 오는 지명은 괴곡, 외장압, 내장압, 고도사리, 홍동, 운수동, 난곡소를 합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다. 1914년에 1,2구로 분구하여 온 것이 현재에 이루고 있다.

  • (가) 운곡리 1리
    • 한솥태(寒鼎) : 괴곡 동남쪽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찬물이 솟아 옛날에는 약수라 하여 솟을 걸어놓고 생활했던 곳이라 이름지었다.
    • 홍골(洪洞) : 장압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높고 골이 깊은데 마을이 넓고 평안하다고 불러진 이름이다.
  • (나) 운곡리 2리
    • 안장압(內長鴨) : 안쪽에 있는 장압마을
    • 바깥장압(外長鴨) : 바깥쪽에 있는 장압마을
    • 운수동(雲水洞) : 괴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매우 아름다운데서 유래된 이름
읍내리(邑內里)

읍내리(邑內里)는 본면의 사북부에 위치하여 면전은 189㎢ 동으로는 효근리(孝根里), 서로는 금신리(錦新里), 남으로는 효근리3구 ,한정과 문방, 금신3구 신곡 북으로는 조천리와 청용리로 위치가 변하였으며 칠보산 자기산의 근원을 하여 육개법정부락의 중심지에 위치하였음. 각 공공기관의 읍내리(邑內里)에 속하였던 것을 한일합병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廢合)으로 구명, 역대(場垈), 문현(文玄), 교촌(校村), 국동(菊洞), 석항, 홍문상리(紅門上里) 홍문하리(紅門下里), 이가동, 남평, 독거리, 교촌, 정자(定子), 리동(梨洞)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청안면(靑安面) 읍내리로 편성하여 행정을 시행하다 현재 사개리로 구분하였다.

  • (가) 읍내리 1리
    • 홍문리(紅門里) : 홍문살이 있는 마을
    • 방축리 : 국사랭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방축이 있었음
    • 사장터 : 장터 앞뜰에 있는 옛 활터
    • 동헌터 : 동헌이 있는 곳
    • 국동(菊洞) : 읍내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홍문(紅門) : 읍내리 남쪽에 있는 마을
    • 들목거리 : 읍내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 (나) 읍내리 2리
    • 장터(場垈) : 돌문거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천안 장이 섰던 마을이며 청안면(靑安面) 소재지 마을이다.
  • (다) 읍내리 3리
    • 향교말(校村) : 마을에 향교가 있다하여 지어진 이름
  • (라) 읍내리 4리
    • 새동내마을 : 6.25 이후에 대민 수용 대책으로 인하여 당시 사회과장으로 재직중이던 장두환씨가 택지를 조성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새동내라칭함
장암리(長岩里)

본래 청안군 동서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황암(黃岩), 장척(長尺), 사이지경리(仕以地境里)를 병합(倂合)하여 장척(長尺)과 황암(黃岩)의 이름을 따서 장암리(長岩里)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의 편입(編入)되었으며 1985년 10월 15일에 부흥출장소(富興出張所)의 관할구역으로 편입(編入)되었다.

  • (가) 장암리 1리
    • 샛골, 음달말
  • (나) 장암리 2리
    • 장척(長尺) : 장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속에 있는 마을로 동쪽 산 장자봉과 마을앞에 도랑물이 ㄱ자 같이 흐름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다) 장암리 3리
    • 황암(黃岩)
  • (라) 장암리 4리
    • 아랫지경(下地境)
조천리(釣川里)

본래 청안군 읍내면의 지역인데 서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봉성리(鳳城里), 봉암리(鳳岩里), 송암리(松岩里), 욕동(浴洞), 조강리(釣江里), 덕암리(德岩里), 월암리(月岩里), 청당리(請唐里), 연천리(燕川里), 청하리(淸荷里), 정자리(程子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조강(釣江)과 연천(燕川)의 이름을 따서 조천리(釣川里)라 해서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한강과 금가의 분수인 월현과 송티를 배경으로 하여 구릉지에 산재하여 있는 마을이며 고대지명으로 금강 상리, 유기촌, 욕동, 송티 , 연천등 12개 부락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廢合)으로 청안면(靑安面) 조천리(釣川里)로 편성되어 오다가 광복후에 4개구로 분구하여 행정을 하여 오던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가) 조천리 1리
    • 조강곡(釣江) : 제비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낚시가 잘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
  • (나) 조천리 2리
    • 멱수골 : 조천리의 상리 뒤편에 있는 마을로 조강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마을 사람들이 목욕을 하던 개울을 끼고 있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 (다) 조천리 3리
    • 서당마을 : 옛날에 어린이들에게 한학을 가리키는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마을이다.음지촌 : 마을이 그늘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 (라) 조천리 4리
    • 제비내(燕川) : 조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제비내 흐름으로 명이 되었다. 마을앞에 흐르는 내의 모양이 제비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제비내라 불리웠다.
    • 중마을 : 제비내 마을 서쪽에 위치한 마을
    • 마을 : 제비내 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 돌담거리 : 제비내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청용리(淸龍里)

본래 읍내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은행정(銀杏亭), 매박(梅村), 투계(土階), 청당(淸塘), 회룡리(會龍里) 일부(一部)와 북면(北面)의 은행정리(銀杏亭里) 일부(一部)를 병합(倂合)하여 청당(淸塘)과 회룡(會龍)의 이름을 따서 청용리(淸龍里)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1814년 신대를 합하여 행정구역을 다시 1,2,3구로 분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가) 청용리 1리
    • 웃말 : 매발리 동쪽에 있는 마을
    • 아랫말 : 매발리 서쪽 마을
    • 절골 :옛날에 절이 있어 생긴 이름
  • (나) 청용리 2리
    • 신대(新垈) : 매박리 서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 조선말기 읍내면 청당리였으나 행정구역을 1917년 조정당시 청안면(靑安面) 청용리 신대 부락이라 불리다 새터말이라 칭하였다.
  • (다) 청용리 3리
    • 회룡골(會龍里) : 래용산이 마을을 둘러 있으며 산새가 용비외안형이라 즉 용이 서려있는 형에 하늘에 승천하는 지세라 하여 회용이라하였다.
    • 행화동 : 살구나무가 있는 마을이었으나 현재에는 경작지로 변하였다.
    • 내룡들 : 부락 산을 넘으면 들이 있으며 안회룡골이라 불린다.
효근리(孝根裸)

고대의 지명으로는 리목동, 도군, 분사동, 삼거리, 효자신, 효재, 한정, 탑동을 합하여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廢合)으로 청안면(靑安面) 효근리로 편성하여 오다가 광복후에 다시 삼개구로 분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본래 청안군 읍내면의 지역이엇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일부를 효자리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효자와 진근리의 이름을 따서 효근리(孝根裸)라 하고 청안면(靑安面)에 편입(編入)되었다.

  • (가) 효근리 1리
    • 배나무골(이동(梨洞)) : 효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서 동리입구에 돌배나무가 있어 유래되었다.
  • (나) 효근리 2리
    • 도근리(道根里) : 이조시대에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다니던 길이라 하여 도근리라 하였다.
  • (다) 효근리 3리
    • 참샘골(寒井) : 배나무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찬샘이 있어 이름하게 되었다
    • 효재리(孝才里) : 찬샘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신효자가 났다고 함
    • 탑동(塔洞) : 찬샘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년댄느 알수 없으나 고려중엽에 세워졌다고 예상되나 구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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